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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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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52년 미국에서 태어난 정치학자이자 작가이다. 그는 코넬 대학교에서 고전학 학사 학위를,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랜드 코퍼레이션, 국무부 정책기획본부, 조지 메이슨 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후쿠야마는 1989년 냉전 종식 이후 자유민주주의가 세계의 최종적인 형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저서 『역사의 종말』로 유명해졌다. 그는 신보수주의자로 활동했으나, 이라크 전쟁 이후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현재는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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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BloggingHeads.tv 팟캐스트 이미지
2015년의 후쿠야마
이름프랜시스 요시히로 후쿠야마
출생일1952년 10월 27일
출생지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배우자로라 홀름그렌
자녀3명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학력
학사코넬 대학교
박사하버드 대학교
소속 기관
소속조지 메이슨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 분야
주요 관심사개발도상국
정부
국제 정치 경제
국가 건설 및 민주화
전략 및 안보 문제
주요 아이디어역사의 종언
영향
영향을 준 인물아리스토텔레스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찰스 다윈
프리드리히 니체
C.S. 루이스
앨런 블룸
헤겔
새뮤얼 P. 헌팅턴
알렉상드르 코제브
하비 맨스필드
레오 스트라우스
세이무어 마틴 립셋
막스 베버
지도교수
지도교수새뮤얼 P. 헌팅턴
박사 학위 논문 제목소련의 중동 개입 위협, 1956-1973: 소련의 위험 감수 연구
기타
로마자 표기IPA: /ˈfuːkuːˌjɑːmə/
소속 연구회국제민주주의포럼 연구회 회원

2. 생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학계 및 연구 기관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1979년부터 랜드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1979~1980년, 1983~1988년, 1995~1996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본부 직원(1981~1982년, 1989년)으로도 근무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교 교수(1996~2000년), 존스홉킨스 대학교 폴 H. 니체 고등 국제관계 대학원(SAIS) 교수를 거쳐 현재는 스탠퍼드 대학교 프리먼 스포글 국제문제연구소 산하 민주주의, 개발 및 법치 센터의 올리비에 노멜리니 선임연구원 겸 상주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스탠퍼드 대학교 포드 도르시 국제정책 석사 과정 책임자이다.[7] 간사이 대학교 정책창조학부 객원교수(2007년 4월~)를 겸임하고 있으며, 도시샤 대학교 명예문학박사(2007년), 간사이 대학교 명예박사(2009년) 학위를 받았다.[68][69]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야간 세션에 참여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52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하이드 파크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05년 러일 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서부 해안에서 가게를 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을 당했다.[10] 아버지 요시오 후쿠야마는 2세대 일본계 미국인으로, 미국 성공회 목사로 훈련받았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아 종교학을 가르쳤다.[11][12][13] 어머니 카와타 도시코 후쿠야마는 일본 교토 출생으로, 교토 대학교 경제학과 설립자이자 오사카 시립대학교 초대 총장인 카와타 시로의 딸이다.[14]

일본 이름이 요시히로인 프랜시스는 외동으로 맨해튼에서 자랐으며, 일본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어 일본어를 배우지 못했다.[11][12] 1967년 그의 가족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테이트 칼리지로 이주했다.[14]

후쿠야마는 코넬 대학교에서 고전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앨런 블룸 밑에서 정치 철학을 공부했다.[12][15] 그는 처음에는 예일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밟았고, 롤랑 바르트자크 데리다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6개월 동안 파리에 머물렀지만, 낙담하여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12] 그는 그곳에서 새뮤얼 헌팅턴과 하비 맨스필드 등과 함께 공부했다. 그는 중동에 대한 소련의 개입 위협에 관한 논문으로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2][15] 1979년에는 세계 정책 싱크탱크인 RAND Corporation에 합류했다.[12]

후쿠야마는 코넬 대학교 재학 시절 텔류라이드 하우스에 거주했으며, 텔류라이드 협회와 관계를 맺어왔다. 텔류라이드는 스티븐 와인버그, 폴 울포위츠, 캐슬린 설리반 등 저명한 지도자와 지식인들을 배출한 교육 기관이다.

2. 2. 경력

후쿠야마는 1979년 랜드 연구소에 입사하였다.[67] 랜드 연구소에서 1979년부터 1980년, 1983년부터 1988년,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1981년부터 1982년, 그리고 1989년에는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본부에서 근무하였다.[67]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조지 메이슨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고, 이후 존스홉킨스 대학교 폴 H. 니체 고등 국제관계 대학원(SAIS) 교수를 거쳐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67]

2007년 4월부터 간사이 대학교 정책창조학부 객원교수를 겸임했다.[68] 2007년 도시샤 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2009년 간사이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68][69]

3. 학문적 업적 및 사상

후쿠야마는 1989년 냉전 종식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계가 자유민주주의에 정착함으로써 이념 간의 투쟁으로서 인류 역사의 진행은 대체로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16][17] 그는 ''국가이익''(The National Interest)에 발표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라는 논문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처음에는 중국에서, 그러고 나서 소련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과정과 죽음은 세계사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16]

> 역사의 종말은 모든 인간이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가는 과정에서 전세계의 시장이 하나의 공동 시장으로 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세계가 되어 평화로우면서도 모든 사람이 물질적인 욕구에 만족하게 되는 세계이다.[17]

그러나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말은 갈등이나 소규모의 전쟁과 같은 것들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발전을 가져올 만한 투쟁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의 종말 이후 시대인 민주주의 시대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를 다 충족시키면서도 더 이상 정신적인 욕구마저 없는 인간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에 만족하면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투쟁을 더 이상 하려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게 되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니체의 개념을 빌려 '마지막 인간'이라고 하였다.

2011년 출간된 『정치 질서의 기원』에서 후쿠야마는 비교 정치사를 사용하여 정치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면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요소를 설명한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이상적인 정치 질서는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국가를 지배하는 법치주의, 그리고 책임성이 필요하다.[22]

3. 1.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 (1992)

후쿠야마는 자신의 저서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그는 1989년 냉전 종식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계가 자유민주주의에 정착함으로써 이념 간의 투쟁으로서 인류 역사의 진행은 대체로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16][17] 이 책은 그 이전에 ''국가이익''(The National Interest)에 발표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이라는 논문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후쿠야마는 정치적 및 경제적 자유주의의 세계적 승리를 예측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처음에는 중국에서, 그러고 나서 소련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과정과 죽음은 세계사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마나과나 평양 또는 마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인간 역사의 전위대로 그러한 이상을 요청해나가고 있는 큰 나라들은 이제 하나도 없다.

> 역사의 종말은 모든 인간이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가는 과정에서 전세계의 시장이 하나의 공동 시장으로 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세계가 되어 평화로우면서도 모든 사람이 물질적인 욕구에 만족하게 되는 세계이다. 따라서 거대한 역사적 투쟁은 사라지고 오로지 부분적인 사건들로만 가득찬 세계,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매우 권태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세계이다. 이것은 곧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사실상 영원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말은 갈등이나 소규모의 전쟁과 같은 것들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발전을 가져올 만한 투쟁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의 종말 이후 시대인 민주주의 시대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를 다 충족시키면서도 더 이상 정신적인 욕구마저 없는 인간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에 만족하면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투쟁을 더 이상 하려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게 되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니체의 개념을 빌려 '마지막 인간'이라고 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를 보면 인간은 세계 공동 시장화를 통해서 경제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적이고 가장 정당한 정치 체제로 사실상 인정되고 있다.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 원초적 욕구가 만족되는 세계에 도달하였으며 역사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냉전의 종식과 함께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랄프 다렌도르프와 같은 저술가들은 1990년에 이 논문이 후쿠야마에게 15분의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곧 잊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18] 그러나 후쿠야마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이자 인용되는 지식인으로 남았으며, 이는 미국 공동체주의아미타이 에치오니로 하여금 그를 "몇 안 되는 지속적인 지식인 중 한 명"이라고 선언하게 만들었다.[19] 버나드 크릭은 그의 저서 『민주주의』(Democracy)에서 후쿠야마의 "세계의 종말" 원칙은 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관여된 역사적 과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역사의 종말』에 대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태도였다. 후쿠야마의 견해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자유민주주의 이면의 이념을 약화시켜 서구 세계를 잠재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20] 마르크시즘과 파시즘이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보주의 시대의 희망찬 태도를 받아들일 충분한 이유가 되었는데, 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미 문화적 의식에 깊숙이 자리 잡은 포스트모더니즘은 희망도 없고 필요한 공동체 의식을 유지할 만한 것도 없이, 오직 고상한 지적 전제에만 의존했다.[21]

3. 2. 신보수주의와의 관계 및 결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레이건 행정부의 레이건 독트린 수립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신보수주의 부상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다.[32] 1997년부터 미국의 새로운 세기 프로젝트 싱크탱크에서 활동했으며, 1998년에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의 축출을 위해 이라크 반군을 지원할 것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단체의 서한에 서명했다.[33] 2001년 9월 20일, 9·11 테러 이후 윌리엄 크리스톨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 40명의 공동 서명자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할 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을 이라크 권좌에서 제거하기 위한 단호한 노력"에 착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34]

이라크 전쟁 지지자로서, 후쿠야마는 미국이 일방주의를 행사하고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비판자들에 맞서 전쟁을 옹호하며, "미국인들은 추상적인 '국제 사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는 궁극적으로 안보라는 중요한 문제에 있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35]

2006년 2월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후쿠야마는 진행 중인 이라크 전쟁을 고려하여 "미국 외교 정책에 필요한 것은 협소하고 냉소적인 현실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수단과 목표를 더 잘 맞추는 '현실적인 윌슨주의'의 수립이다."라고 말했다.[36] 그는 신보수주의와 관련하여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이며, 그것은 신보수주의도 현실주의도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신념을 유지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미국의 힘과 패권의 효능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라고 덧붙였다.[36]

3. 3. 『정치 질서의 기원』 (2011) 및 『정치 질서와 정치적 쇠퇴』 (2014)

2011년 출간된 『정치 질서의 기원』에서 후쿠야마는 비교 정치사를 사용하여 정치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면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요소를 설명한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이상적인 정치 질서는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국가를 지배하는 법치주의, 그리고 책임성이 필요하다.[22]

3. 4. 기타 저작


  •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Free Press, 1992).

: 와타나베 쇼이치 역, 역사의 종말 미카사쇼보(상·하), 1992년, 신판 2020년 외 / 지적 생활 문고(상·중·하), 1992년

  • 신뢰: 사회적 미덕과 번영의 창조(Free Press, 1995).

: 가토 히로시 역, 믿음이 없이는 설 수 없다 미카사쇼보, 1996년

  • 대혼란: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의 재구축(Free Press, 1999).

: 스즈키 지카라 역, "대붕괴"의 시대――인간의 본성과 사회 질서의 재구축 하야카와쇼보(상·하), 2000년

  • 우리의 포스트휴먼 미래: 생명공학 혁명의 결과(Farrar, Straus and Giroux, 2002).

: 스즈키 요시미 역, 인간의 종말――생명공학은 왜 위험한가 다이아몬드사, 2002년

  • 국가 건설: 21세기의 거버넌스와 세계 질서(Profile Books, 2004).
  • 갈림길에 선 미국: 민주주의, 권력, 그리고 신보수주의의 유산(예일대학교 출판부, 2006).

: 아이다 히로쓰구 역, 미국의 종말 고단샤, 2006년

  • 정치 질서의 기원: 인류 이전 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까지(Farrar, Straus and Giroux, 2012).

: 아이다 히로쓰구 역, 정치의 기원――인류 이전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고단샤(상·하), 2013년

  • 정치 질서와 정치 쇠퇴: 산업혁명에서 현재까지(Farrar, Straus and Groux, 2015).

: 아이다 히로쓰구 역, 정치의 쇠퇴: 프랑스 혁명에서 민주주의의 미래까지 (상·하) 고단샤, 2018년

  • 야마다 후미 역, 정체성: 존엄의 욕구와 분노의 정치 아사히 신문 출판, 2019년.
  • 야마다 후미 역, 「역사의 종말」의 뒤에서 마틸데 파스팅 편, 중앙공론신사, 2022년.
  • 아이다 히로쓰구 역, 자유주의에 대한 불만 신초사, 2023년.
  • 냉전 이후의 미일 안보 관계(The U.S.-Japan Security Relationship after the Cold War), 오 콩단(Kongdan Oh) 공저, (Rand, 1993).

: 오 콩단(Kongdan Oh)/근동 강 역 냉전 후의 미일 동맹 ― 「성숙한 역사」 종말의 시작(冷戦後の日米同盟――「成熟の歴史」終わりの始まり) 도쿠마쇼텐, 1994년

  • 가상 기업(Virtual Corporation)과 육군 조직(The "Virtual Corporation" and Army Organization), 슐스키 아브람 N.(Abram N. Shulsky) 공저, (Rand, 1997).
  • 국가 건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넘어서(존스홉킨스대학교 출판부, 2006).
  • 맹점: 세계 정치에서 강제 사건과 와일드 카드를 예측하는 방법(브루킹스 연구소 출판부, 2007).
  • 뒤처짐: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의 발전 격차 설명(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2008).
  • 안제이 코르본스키(Andrzej Korbonski)와 공동 편집, 소련과 제3세계: 지난 30년(코넬대학교 출판부, 1987).
  • 켄트 E. 캘더(Kent E. Calder)와 공동 편집, 동아시아 다자주의: 지역 안정의 전망(존스홉킨스대학교 출판부, 2008).

4. 정치적 견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레이건 행정부의 레이건 독트린 수립에 기여하고 신보수주의 부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97년부터 미국의 새로운 세기 프로젝트 싱크탱크에서 활동했으며, 1998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이라크 반군을 지원하여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것을 권고하는 서한에 서명했다.[33] 또한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오사마 빈 라덴 체포 및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서한에도 서명했다.[34]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며, 미국이 일방주의를 행사하고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에 대해 "국가는 궁극적으로 안보 문제에 있어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했다.[35]

2006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후쿠야마는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해 "협소하고 냉소적인 현실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수단과 목표를 더 잘 맞추는 '현실적인 윌슨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36] 그는 신보수주의에 대해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신념은 유지하되, 미국의 힘과 패권의 효능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36]

그러나 후쿠야마는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의제, 특히 중동에서의 과도한 군사주의와 일방적인 무력 개입을 비판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2004년 중반에는 이라크 전쟁[37]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38]

2004년 미국 기업 연구소 만찬에서 딕 체니와 찰스 크라우터머가 미국의 일극 체제 시대 시작을 선언했을 때, 후쿠야마는 이라크 전쟁을 실책으로 보고 "내 친구들은 모두 현실을 잊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39] 그는 이후 폴 울포위츠와 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39]

후쿠야마는 부시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부시 행정부가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41]


  • 미국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 과장
  • "자애로운 패권"에 대한 부정적 반응 예측 실패 및 반미주의 증가 간과
  • 이라크 평화에 필요한 것을 잘못 판단하고 사회 공학 적용에 지나치게 낙관


후쿠야마는 미국이 세계에 자체 가치를 증진할 권리가 있지만, 군사 개입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다른 조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현실적인 윌슨주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촉진하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탁월하게 해낸 국제 기구 설립을 언급하며, 이러한 구조에 대한 지원으로 복귀해야 미국의 힘과 국제적 정당성을 결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42]

200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 에세이에서 그는 신보수주의를 레닌주의와 동일시하며, "신보수주의는 정치적 상징과 사상의 집합체로서 내가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는 것으로 발전했다"고 비판했다.[43] 그는 신보수주의 순간의 종식을 선언하고 테러와의 전쟁의 군사화 해제를 주장했다.[43]

후쿠야마는 존 F. 케네디의 취임 연설을 인용하며, 지하디스트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은 "길고 어스름한 투쟁"이며, 그 핵심은 군사 작전이 아니라 전 세계 일반 무슬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정치적 경쟁이라고 말했다.

2007년 후쿠야마는 미국의 이란에 대한 태도를 비판하며, "우리가 제시하는 유일한 것이 우리가 당신과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이란인들이 오랫동안 정말 원했던 것은 대타협입니다."[45]라고 말했다. 2009년 그는 이란을 "사소하거나 위대한 폭정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이란은 1979년 헌법의 광범위한 틀 내에서 진정한 법치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46]고 덧붙였다.

2018년 ''뉴 스테이츠먼''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에서 사회주의 정치의 부활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사회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그는 생산 수단의 소유는 공공 시설과 같이 명확하게 요구되는 영역을 제외하고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소득과 부의 큰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재분배 프로그램은 필요하며,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47] 그는 칼 마르크스가 말한 과잉 생산의 위기, 노동자 빈곤, 수요 부족 등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포스트'' 서평에서 후쿠야마는 에즈라 클라인의 2020년 책 ''왜 우리는 분열되어 있는가''를 논의하며, 미국 정치에서 인종과 백인 정체성의 중요성에 대한 클라인의 결론을 도널드 트럼프 유권자와 공화당원들에게 설명했다.[48]

2020년 후쿠야마는 잡지 ''American Purpose''의 편집위원장이 되었다. 이 잡지는 미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증진, 다른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이해 및 의견 제시, 역사, 전기, 예술, 문화, 과학, 기술에 대한 비판과 논평 제공을 목표로 한다.[49]

후쿠야마는 자유주의 가치의 건전한 방어를 위한 국가 정체성의 중요성, 그리고 국가와 자유주의 보편주의를 조화시킬 필요성을 강조했다.[52] 그는 자유주의적 권리는 국가에 의해 시행될 수 없다면 무의미하며, 국가의 영토 관할권은 사회 계약에 서명한 개인 그룹이 차지하는 지역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힘의 위협이나 실제 사용을 통해 규칙을 시행하는 능력은 여전히 국가의 통제하에 있다고 강조했다.

2022년 「엘 파이스(El País)」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야마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오랫동안 집권하며 많은 재분배를 해왔고, 이러한 종류의 양극화된 정치는 일어나지 않으며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사이에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것이 훨씬 더 건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사회민주주의에 반대한 적이 없다. 역사적 시기와 국가 개입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53]

4. 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후쿠야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44]

2020년에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의 승리를 서구 시스템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의 결과로 평가했다.[50]

5. 한국과의 관계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할아버지는 1905년 러일 전쟁을 피해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10] 그의 아버지 요시오 후쿠야마는 일본계 미국인 2세로, 시카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1][12][13] 어머니 가와타 도시코 후쿠야마는 교토 출신으로, 교토 대학교 경제학과 설립자이자 오사카 시립대학교 초대 총장인 가와타 시로의 딸이다.[14] 후쿠야마는 일본 이름이 요시히로이며, 맨해튼에서 자라면서 일본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일본어를 배우지 못했다.[11][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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